어느 IT 디자이너가 식물을 사랑하는 법
어느 IT 디자이너가 식물을 사랑하는 법
어느 IT 디자이너가 식물을 사랑하는 법
눈 뜨고 있는 시간의 대부분은 컴퓨터나 핸드폰을 보고 있는 제가 식물 인터뷰를 하게 되다니 어색하기도 하고 너무 웃기기도 하네요.
저는 완전한 여름형 인간이에요.
여름에 훨씬 활동적이고 제 생각에는 외모도 성격도 여름에 조금 더 나은 것 같아요.
추위를 많이 타서 겨울이 되면 무기력해지고 가급적 실내에서 활동하는 편이에요.
평생 겨울을 가장 싫어했는데, 요즘은 오히려 퇴근 후 곧장 집에 와서 온전히 식물들을 살피는 시간을 즐기고 있어요.
“꼭 필요하더라도 예쁜 걸 찾지 못한다면 그냥 불편한 채로 살기도 해요.”
사실 저희 집은 인테리어 콘셉트라고 할 만한 것은 없어요.
그리 열심히 집을 꾸민 편이 아니라 집 소개하기가 조금 쑥스러운데요.
룰이 있다면 눈에 거슬리는 것이 없어야 한다는 거예요.
맘에 안 드는 물건은 집에 들이지 않고, 구입할 때에도 적당히 괜찮아서, 혹은 쓰다 질리면 버려야지라는 마음으로는 사지 않아요.
꼭 필요하더라도 예쁜 걸 찾지 못한다면 그냥 불편한 채로 살기도 해요.
대신 정말 갖고 싶은 것, 마음에 드는 것이 생기면 반드시 구매해서 오래 사용합니다.
지금 이사 온 집은 6개월도 되지 않아 필요한 게 많은데 마음에 드는 것들을 찾아 채우려면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식물과 내가 함께 만족할 수 있는 공간
부모님은 늘 베란다에서 식물을 키우셨지만, 제가 돌보는 식물이 생긴 건 결혼 후 온전히 저와 남편의 공간이 생긴 후부터였어요.
처음에는 식물들이 어떤 성격인지, 어떤 환경을 좋아하는지 몰라 그저 보기 좋은 공간에 예쁜 식물들을 갖다 놓았더니 금세 죽어버리더라고요.
그렇게 떠나보낸 식물들 사진을 보면 지금도 애틋하기까지 합니다.
많은 식물들의 희생을 통해 물을 ‘적당히’ 줘야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아직 저도 초보라서 노하우랄 건 없지만, 식물이 어디에 있을 때 저와 잘 지낼 수 있는지 고민해요.
최근에는 안방에서도 식물을 보고 싶어 몬스테라를 방으로 들였는데요.
점점 옆으로 넓게 자라는 줄기와 잎들을 피해 다니다 보니 제가 계속 침대 모서리에 부딪히더라고요.
새끼발가락이 얼마나 고통을 받았는지.
식물이 잘 클 수 있는 곳에 두는 것도 당연하지만 함께 만족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가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종종 배치를 바꿔가며 더 좋은 환경과 분위기를 찾아가기도
모든 식물을 아끼고 예뻐하지만, 그중 조금 더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은 ‘필로덴드론 카라멜마블’입니다.
애지중지 키울 거라는 다짐을 담아 애중이라는 이름도 붙여주었어요.
구하기도 어려운 이 식물은 감사하게도 선물로 받았는데 잎의 마블링 무늬가 너무 특이하고 색감도 아름다워요.
필로덴드론 카라멜마블
처음 카라멜마블을 키웠을 때 살던 집은 빛이 잘 들어오지 않아 부모님이 사시는 집에 피신시키듯 요양을 보낸 적이 있어요.
잎이 하나뿐이 남아있지 않던 상태에서 새 순도 내어주고 다시 건강을 되찾았을 때는 얼마나 기특하고 고마웠는지 몰라요.
그렇게 죽다 살아난 애중이는 새 집에서 다시 무럭무럭 잘 크고 있답니다.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가족
“햇빛만이 채울 수 있는 만족감을 알게 되었어요.”
신기하게도 식물에 관심을 갖고 보니 내 주변에 정말 많은 식물들이 있었다는 걸 새삼 느끼기 시작했어요.
늘 사무실 화장실 앞에 있던 산세베리아와 나한송, 창가에 늘어져있는 주인 모를 다육 식물,
자주 가던 카페에 놓인 필로덴드론, 모두 다른 이름을 가진 행잉 플랜트들
식물에 관심이 없을 땐 전혀 보이지 않았는데 지금은 괜히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되더라고요.
업무 특성상 늘 변화를 마주하고 새로운 것을 찾다 보니 웬만한 자극에는 큰 감흥이 없었는데,
식물을 키우면서 작은 변화에도 즐거움을 느끼고 있어요.
새 잎이 날 기미라도 보이면 응원을 하게 되고 축 처진 잎이 생기를 되찾을 때는 저도 다시 힘을 낼 용기를 얻게 된답니다.
뭔가를 사고, 먹고, 근사한 곳을 가야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햇빛만이 채울 수 있는 만족감을 알게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