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과 함께하는 행복한 일상

우리 모두에겐 생명을 사랑하는 유전자가 있다

우리 모두에겐 생명을 사랑하는 유전자가 있다

우리 모두에겐 생명을 사랑하는 유전자가 있다

삐뚤어진 거 아녜요 휘어진 나무에 대하여

1909년, 10살 소녀 메리 레녹스는 부유한 영국인 부모님과 함께 인도에서 살고 있었어요.

하지만 여행 중 급작스러운 사고로 부모님이 돌아가셨고,

혼자 남게 된 메리는 영국 요크셔에 사는 고모부 밑에서 자라게 되었어요.

고모부에게는 아들 콜린이 있었는데, 자신이 꼽추가 될 거라는 무서운 상상에 갇혀 방 안에서만 지내는 병약한 아이였어요.

회색의 황무지 땅, 낡고 커다란 집 안에서 메리의 건강도 점점 나빠져 갔어요.

그러던 어느 날, 메리는 우연히 폐허가 된 비밀의 화원을 발견했어요.

호기심이 생긴 메리는 꽃씨를 뿌리고, 덩굴을 잘라내며 화원을 가꾸기 시작했어요.

바깥세상을 무서워하던 콜린 역시 메리의 손에 이끌려 비밀의 화원을 찾게 되었고, 함께 정원을 가꾸면서 건강을 회복해 나갔어요.

한편, 아들이 자주 집에서 없어진다는 것을 눈치채기 시작한 고모부는 아들의 행적을 뒤쫓다 비밀의 화원을 발견하고,

그 안에서 씩씩하게 걷는 콜린을 보며 지난날의 무심함을 반성합니다.

그렇게 자연의 기적이 일어난 정원에서 메리와 친구들의 행복한 나날이 오래도록 이어졌답니다.

이 이야기는, 1909년에 출판된 프랜시스 버넷(Frances Burnett)의 동화 ‘비밀의 화원(원제: The secret garden)’ 의 줄거리랍니다.

버넷은 자연의 에너지로 인간을 바꾸는 이야기를 아름답게 담아내었어요.

싱싱한 꽃과 푸른 나뭇잎이 심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효과를 생생하고 짜임새 있게 묘사하여,

출간 당시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에게까지 인기가 많았다고 해요.

생명을 사랑하는 유전자, 바이오필리아

1984년, 사회생물학(sociobiology)1의 창시자 에드워드 윌슨은 한 가지 흥미로운 가설을 세웠는데요,

바로 “우리 유전자에는 생명 사랑의 본능이 새겨져 있다.”는 것이었어요.

그의 이론에 따르면, 다른 동식물과 친밀하게 지내려는 인간의 욕구는 상당히 선천적이어서,

생명 사랑 본능이라고 부를 만하며,

아동기 초기부터 지속해서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우리의 뇌가 짠 프로그램의 일부인 듯하다는 것이죠.

“누구나 곤충에 매료되는 시기가 있다, 나는 아직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에드워드 윌슨 박사

그리고 수 많은 실험과 연구 결과가 그의 이러한 가설을 뒷받침하는데요.

일례로, 숲에서 캠핑을 한 아이들이, 도시에서 캠핑한 아이들에 비해 코르티솔2(스트레스 방어 호르몬) 레벨이 더 낮았다고 해요.

또 미시간 대학교에서는 학생을 대상으로 기억력 테스트를 한 뒤, 두 그룹으로 나눠 A그룹은 수목원을,

B 그룹은 도심 속을 2시간 동안 산책하게 했는데요.

산책 후 같은 테스트를 했을 때, 나무 사이를 걸었던 A그룹의 기억력이 20% 더 좋아졌고, B그룹은 향상되지 않았다고 해요.

이렇게 자연 앞에서 편안해지고 자연에 이끌리는 인간의 본성을 바탕으로,

자연 요소를 적극적으로 우리 생활공간에 들여놓는 바이오필릭 디자인(Biophilic Design) 문화 역시 늘어나고 있어요.

비밀의 화원에서 콜린이 건강해졌듯, 에드워드 윌슨 박사님이 주장하듯,

자연에게는 정말 우리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는 걸까요?

그리고 우리는 정말 날 때부터 생명과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일까요?

그걸 무척 사랑하는군요?

제일 친한 친구야. 항상 행복해하고, 질문도 안해.

도심 속 삶은 때로는 너무 갑갑해요.

모든 것이 깔끔하고 편하지만, 그만큼 시끄럽고 복잡하며, 온갖 일이 벌어지죠.

그렇게 굴러가는 삶의 굴레 속에서 상처받는 나를 발견할 때가 있어요.

“나무는 조용하거든요. 그래서 나무와 함께하는 시간에는 나도 온화해지는 것 같아요.”

나무에게서 위로를 받고, 안정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나요?

그들은 한결같이 말한답니다.

오랜 시간 동안,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늘 그 자리에서 묵묵히 있었기에 더 없이 위안이 된다고 말예요.

우리 곁의 강아지와 고양이가 ‘애완’동물로 불리는 게 익숙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지금은 ‘반려’동물이라는 표현이 훨씬 널리 쓰이지요.

아마 반려동물과 함께 느끼는 교감과 추억의 가치를 우리가 값지다 여기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돌아보면 자연 역시, 우리와 많은 것을 나누고 있답니다.

예쁜 꽃을 보게 하고, 잎으로 숨 쉬며 맑은 공기를 내뿜고, 달콤한 열매를 주고, 환한 분위기를 선물하지요.

어쩌면 우리 안에 잠들어 있을지도 모르는 생명 사랑 본능을 톡톡 깨워,

말 없는 나무를 살아있는 생명으로 바라본다면, ‘반려나무’라는 표현이 마음에 꼭 와닿는 날이 올 거예요.